하지정맥류: 다리의 ‘역류 장치’가 무너질 때 시작되는 구조적 질환
하지정맥류는 다리에 분포한 정맥의 내부 판막(valve)이 약해지면서 피가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아래로 고이거나 역류하는 과정에서, 혈관이 비정상적으로 늘어나고 굽어지는 질환이다.
흔히 미용적 문제 정도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다리 순환체계 전반의 기능적 붕괴가 서서히 진행되는 상태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정맥은 겉으로 드러나는 구조보다 훨씬 복잡한 시스템이며, 그 균형이 무너질 때 나타나는 것이 바로 하지정맥류다.
정맥은 왜 쉽게 무너지는가: 중력과 싸우는 구조
다리에 위치한 정맥은 ‘중력에 거슬러 올라가는 혈액’을 심장으로 다시 보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맥은 한 가지 중요한 구조적 장치를 갖고 있다.
정맥판막(venous valves)
판막은 혈액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을 막는 일종의 ‘문’과 같은 역할을 한다.
혈액은 근육의 수축을 이용해 위로 밀려 올라가고, 판막은 다시 닫혀 혈액이 내려가지 않도록 한다.
문제는 이 판막이 생각보다 섬세하며, 압력 변화에 민감하다는 점이다.
판막이 약해지거나 늘어나면 더 이상 혈액을 잡아두지 못하고 역류가 발생한다.
이 역류가 반복되면 혈관 벽에 지속적인 부담이 가해지고, 혈관은 점차 늘어나 코일처럼 굽어진 형태가 된다. 이것이 하지정맥류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하지정맥류가 나타나는 과정: 눌림 → 역류 → 울혈 → 변화
하지정맥류는 대개 다음과 같은 진행 순서를 거친다.
1) 판막 기능 저하
유전적 요인, 호르몬 변화, 장시간 서 있는 습관, 비만, 임신 등이 판막 약화를 촉진한다.
2) 혈액 역류 발생
한 번 역류가 시작되면 정맥 내 압력은 정상보다 빠르게 상승한다.
3) 혈관 확장 및 길이 증가
정맥은 탄성이 있어 늘어날 수 있지만, 반복된 압력 증가로 인해 되돌아오지 못하는 수준까지 확장된다.
4) 울혈으로 인한 조직 변화
혈액순환이 지연되면서 산소 공급이 부족해지고,
피부 색소침착, 부종, 염증, 통증 등이 나타난다.
5) 말기에는 피부 궤양, 정맥염 발생 가능
정맥 기능이 더욱 악화되면 만성적 염증과 조직 손상이 반복되고, 심한 경우 피부 궤양으로 이어진다.
즉, 하지정맥류는 단순히 혈관이 ‘보기에 나쁘게’ 변한 것이 아니라, 정맥 기능 전체가 무너진 상태이다.
하지정맥류의 주요 증상
겉으로 보이는 확장된 혈관 외에도 다음과 같은 기능적 증상이 동반된다.
다리가 묵직하고 쉽게 피로해짐
종아리 당김 또는 야간 쥐(특히 저녁·밤에 악화)
발목·종아리 부종
서 있을 때 통증 증가, 걷거나 누우면 완화
피부 색 변화(갈색 또는 청색)
피부 가려움, 열감
심한 경우 표재성 혈전정맥염
증상이 하루의 부담을 반영하여 오후에 악화 → 아침에 호전되는 패턴은 하지정맥류의 중요한 특징이다.
왜 여성에게 더 흔한가
하지정맥류가 여성에게 흔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호르몬 영향
에스트로겐은 혈관벽을 부드럽게 만들고, 임신·폐경 등 호르몬 변화는 판막 약화를 빠르게 한다.
2) 임신
자궁이 커질수록 하대정맥을 눌러 다리로부터의 혈액 귀환이 어려워지고, 이로 인해 정맥압이 높아진다.
또한 혈액량이 임신 중 30~50% 증가하기 때문에 정맥 부담도 늘어난다.
3) 직업·생활 패턴
여성이 오래 서 있거나 걷는 직업군에 종사하는 비율이 높고,
하이힐 착용은 종아리 근육의 정상적인 ‘정맥 펌프 기능’을 떨어뜨린다.
왜 오래 서 있는 사람에게서 더 자주 발생하는가
다리 정맥은 **종아리 근육 펌프(calf muscle pump)**의 도움을 받아 혈액을 위로 보낸다.
하지만 오래 서 있으면 다음과 같은 변화가 일어난다.
근육이 수축하지 않아 정맥 펌프가 작동하지 않음
혈액이 다리 아래로 지속적으로 고임
정맥압 상승 → 판막 손상 촉진
정맥벽이 늘어나며 되돌릴 수 없는 변형 진행
따라서 장시간 서 있는 직업(교사, 조리사, 미용사, 간호사, 판매직 등)은 하지정맥류 고위험군에 속한다.
진단에서 중요한 것은 “정맥 역류의 위치와 범위”
하지정맥류는 단순히 혈관이 보이는 것만으로 진단되지 않는다.
핵심은 어느 정맥에서 역류가 일어나는가다.
대복재정맥(GSV)
소복재정맥(SSV)
천·심부정맥 연결부
천공정맥(perforators)
초음파 도플러 검사를 통해 이 흐름을 정밀하게 확인한다.
왜냐하면 치료 방식이 역류 위치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비수술적 치료의 핵심: 정맥의 부담을 줄이는 환경 만들기
1) 압박스타킹
정맥 내압을 낮추고 혈액을 위로 밀어주는 기본적 치료이다.
특히 장시간 서 있는 직업군, 임신부, 비행이 잦은 사람에게 효과적이다.
2) 걷기 운동
종아리 근육 펌프를 활성화하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강력한 치료.
오래 서 있는 직업이라도 규칙적으로 걸을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3) 체중 관리
체중 증가 → 복압 증가 → 정맥 귀환 저하 → 협착 및 울혈 증가
이 흐름이 반복되기 때문에 체중 관리는 구조적 부담을 크게 줄인다.
4) 다리를 올리고 쉬기
단순하지만 가장 직접적으로 정맥압을 감소시키는 방법이다.
5) 장시간 고정자세 피하기
한 자세로 오래 서 있거나 앉는 것은 하지정맥류 악화의 가장 빠른 경로다.
수술적·시술적 치료는 언제 필요한가
다음 상황에서는 시술·수술을 고려한다.
통증·부종이 지속적으로 심해 일상생활을 방해할 때
표재성 정맥 혈전염이 반복될 때
피부 색소침착, 피부경화가 진행될 때
도플러 검사에서 역류 구간이 명확할 때
대표적인 시술은 다음과 같다.
레이저/고주파 정맥 폐쇄술
정맥 접착(glue) 시술
스트리핑 수술
미세정맥절제술
이 시술들은 역류의 원인이 되는 ‘불량 정맥’을 폐쇄하거나 제거해 혈류를 정상 경로로 되돌리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레이저·접착술 등 회복이 빠른 방법이 주류다.
예방의 핵심: 정맥이 ‘쉴 수 있는 순간’을 만드는 것
다리 정맥은 하루 종일 중력과 싸운다.
그러므로 예방은 간단히 말하면 이 싸움을 잠시라도 멈출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다.
하루 중 몇 차례 다리 올리기
틈틈이 걷기·종아리 펌핑 운동
오래 서 있는 직업이라면 발판 사용 또는 체중 이동
하이힐 대신 편안한 신발
체중 관리
좌식 시간이 길다면 중간중간 발목 회전·발끝 들기
작은 습관만 바꿔도 정맥의 부담은 빠르게 줄어든다.
마무리
하지정맥류는 겉으로 보이는 혈관의 문제가 아니라,
정맥판막·정맥벽·근육 펌프·자세 습관이 모두 연결된 순환 시스템의 문제다.
정맥의 여유 공간이 줄어들고 역류가 시작되면 증상은 서서히 진행되지만,
초기 단계에서는 일상적 습관 변화만으로도 충분히 진행을 늦추거나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
핵심은 정맥이 중력과 싸우는 동안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구조를 이해하고 패턴을 바꾸면, 하지정맥류는 장기적으로도 충분히 관리 가능하다.